망막 스캔을 마치고, 13자리 기호 코드를 입력하고, 구강 표본 DNA 검사를 마치고 난 이후에도 밥은 근무 중인 사이보그에게 이름을 말해야 했습니다. "로베르트 칼라비치." 투덜대며 이름을 말한 밥은 결국 타임 에이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내실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보안이 장난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 침에서 나올 술 성분에 대해서는 협회에서 너무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군." 수석 교관은 살짝 걱정 섞인 혼잣말로 툴툴거립니다.
하지만 그는 곧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습니다. 그의 직책에 그런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의 약한 모습을 훈련생들이 보게 된다면, 끝없이 구설수에 오를 테니까요. 대신 그는 상황 설명실의 돌출된 유리창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는 요원들을 못 본 척하며 중앙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사실 밥은 자신이 불쑥 들이닥쳤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요원들의 두려움 섞인 시선을 즐기고 있습니다.
밥은 암울한 방 중앙에 선 채, 보르가 정신 병원에서 이제 막 돌아온 어린 요원들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오랜 시간 동안 즐거운 기분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요원들의 임무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실 샤워를 마치고 볼에 마른 침도 닦아낸 그들은 얼추 어엿한 요원의 모습입니다. 밥은 요원들이 말없이 서서 서로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는 것을 지켜봅니다. 아마도 그들은 또 다른 시험을 걱정하는 눈치입니다. 지난 2년간 지속된 훈련 기간 동안 밥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계속 시험을 보도록 했었기 때문입니다.
'빌어먹을.' 밥이 생각합니다. '풋내기들이 피땀 흘리는 걸 보는 건 너무 즐겁다니까. 에이전시의 가상 심리학자 말이 맞았어. 우리 아버지와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밥은 헛기침을 하며 침묵을 깹니다.
"내가 말했듯 컨소시엄은 여러분의 1921NT에서의 임무 수행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이제 제군들의 보고서를 간략히 확인해볼 거다. 내가 말했던 바와 같이 로라는 역사 분석을 통해 제군들의 임무 영향 정도를 평가하고 있어. 나는 그동안 제군들의 신경-기록을 개인적으로 살펴볼 거다. 안타깝게도 아직 제군들은 부족한 점이 많다. 숙주들의 정신에 너무 쉽게 제압당했어."
"음, 사실 저희의 기억과 숙주의 기억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훈련 기간만 2년이다, B173 요원." 밥이 대답합니다. "자네는 신경-가상훈련을 백만 시간 넘게 했지만 십 대 여자아이 몸에 들어간 지 45분 만에 인간의 살을 뜯어먹으려 했단 말이지."
밥의 말을 듣고 기억을 떠올린 한 요원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립니다.
밥은 다른 요원들과 함께 앉아 이번 전송의 과정을 분 단위로 되짚어봅니다. 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복잡한 이야기에 놀라며 주의 깊게 증언과 설명을 기록합니다. 항상 그렇지만 이번 임무 성공도 순전히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기적... 아니면 혹시 타임 라인이 도와준 것일까요? 에이전시의 설립자 중 한 명인 콰르테스 교수라면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신입 요원이 말합니다. "그곳에서 벌어진 일에 정말 놀랐습니다. 괴물들, 의식... 그런 마술 같은 것들에는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정말 실제 상황 같아서..."
"실제 상황일 수 없지." 밥이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시간을 다루는 데에는 많은 방법이 있지만, 제군들이 보았듯이 인류는 25세기 동안 재미 삼아 잠깐 시간을 건드려 보는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시간 여행은 우리의 수준을 넘어선 기술이며, 당연히 미신에 빠진 놈들 따위는 훨씬 초월하는 기술이지."
"사람들이 과거에도 시간 여행을 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1921년에 이 정신 나간 박사가 시공간을 뛰어넘으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타락한 과학 기술로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거라 생각하나? 나라고 제군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난 제군들을 감독하고 준비시키는 일을 하는 거라고. 더 궁금한 점이 생긴다면 로라나 컨소시엄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할 거야."
밥의 앞에 앉은 네 명의 신입 요원은 지친 웃음을 짓습니다.
"그래, 그들은 자네들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거야." 밥이 빙그레 웃습니다. "그러니 이런 점은 자네들이나 나나 차이가 없다고."
신입 요원들의 실망한 표정을 바라보고 밥은 힘차게 머리를 긁적이며 의자에서 일어납니다.
"글쎄, 내가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자네들에게 보여줄 게 있다. 따라오도록."
신입 요원들은 밥을 따라 상황 설명실 밖으로 나옵니다. 일행은 감시 카메라를 우회하여 실험실로 들어갑니다.
실험실 중앙에 위치한 유리 벽 내부에 40cm가량의 큐브가 떠있습니다. 빛이 큐브의 표면에서 깜빡거리며 큐브의 세세한 부분까지 측정하며 분석하고 있습니다. 신입 요원들이 숨 돌릴 틈도 없이, 화난 표정의 로라가 대형 스크린에 나타납니다.
"신입 요원 여러분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녀가 소리칩니다. "내가 데려왔다." 밥이 말합니다. "훈련의 일부야." "이사회의 생각은 다를 것 같은데요." "그래, 두고 보지. 어쨌든 이걸 다시 가져온 건 이 신입 요원들이라고." "우리가 이걸 가져왔다고요?" 신입 요원 중 한 명이 깜짝 놀라며 묻습니다. "그래. 아니면 적어도 자네들이 숙주에서 나올 때 이게 발견되었다고. 우리도 설명할 수 없다. 로라조차도 이게 뭔질 모르니까 말이야."
화면에 있는 푸른 얼굴의 로라가 어깨를 으쓱합니다.
"글쎄요. 유력한 가설은 있습니다. 이것은 양자 물체인데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아마 눈치채셨겠지만 본부에 나타난 이후에도 계속 진화하고 있고요. 각 면뿐만 아니라 크기도 변했어요. 아무래도 이건 일종의 컴퓨터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정보와 암호화된 데이터를 담고 있는 물체 같아요. 이 물체는 파장과 에너지에 반응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해독하는 작업을 진행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