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15분.
상황 설명실 출구에서의 갑작스러운 움직임. 서둘러 나오는 요원들 중 몇몇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상황 설명실을 향해 거친 말을 내뱉는 요원도 보입니다. 회의는 시작하자마자 안 좋은 분위기에서 끝나버렸습니다. 요원들은 시간 여행 장치에서 나온 지 10분 만에 밥, 라조브스키 요원 앞에 시체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요원들은 그들의 마음속을 후벼판 끔찍한 장면들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숙주들은 잔인하게 잡아먹히고, 살은 갈기갈기 찢겼으며, 모든 것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밥은 역시 전문가 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요원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과 모욕과 윤리적인 질문들을 냉정하게 견뎌냈습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밥은 임무 성공을 축하해주었으며 '사망으로 인한 숙주와의 분리 트라우마 해소'를 위한 신경정신과 상담 일정을 잡아주었습니다. 요원들의 질문에는 일절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요원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각 요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영상 파일이 전달되었습니다. 명백히 보안 허가를 받지 않은 영상으로 보였고, 샘이 그것을 허용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원들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 영상을 확인합니다.
//전송// 오전 11시 2분
"자리에 앉으세요, 밥. 우리가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겠죠?" 밥은 뻣뻣한 자세로 지시에 따르며 아무것도 없는 기다란 회의실 탁자 맞은편에 앉아있는 7명의 사람들을 쳐다봅니다. 밥은 표정 관리를 해보려 하지만 실패합니다. 그의 얼굴에는 스트레스, 오만함, 죄책감이 스쳐 지나갑니다.
밥은 탁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를 고용하고 있는 조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 바로 이사회입니다. 중앙의 다섯 명은 컨소시엄의 거물들입니다. 그들이 껴입고 있는 회사 로고가 새겨진 엄두도 못 낼 만큼 값비싼 제복은, 장의사 같은 그들의 외모와 잘 어울립니다. 에이전시의 돈줄인 그들은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에이전시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오른쪽에 앉아있는 오슬로 브란 론 교수는 자신의 홀로패드를 조작하는 데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늙은 학자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는 이사회의 사소한 관심사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밥은 그가 왜 이 자리에 참석하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는 이사회의 평생회원이긴 하지만, 그의 동료인 콰르테스 교수에게 자신의 역할을 위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오슬로 교수는 끈이론과 암흑 물질을 연결하는 추상 모델을 풀어내는 등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회의에 참석합니다.
왼쪽에 앉은 디어드레 콰르테스는 싸늘한 시선으로 밥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빛나는 미모를 가진 그녀는 이제 갓 마흔이 된 것 같아 보이지만, 그녀의 업적들을 생각하면 50세가 넘었을 것 같습니다. 오늘 그녀의 눈가에 보이는 까마귀 발자국을 보니 50세가 넘었을 것이라는 가설에 확신이 생깁니다.
적어도 55...라고 밥은 생각합니다.
콰르테스가 말합니다. "칼라비치씨, 징계 위원회 관련 사유로 이사회를 소집하게 되어 유감이군요. 이사회가 생긴 이래로 두 번째 일입니다. 당신이 업무를 수행하며 해온 용납할 수 없는 행동들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제... 제가 바보짓을 했다는 걸 인정합니다." 밥이 중얼거립니다.
한 임원이 자신의 홀로패드에서 고개를 드는 론 교수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무언가 속삭입니다.
"이번 일에 대해 자네 입장에서 한번 설명해 보겠나, 밥?" 노 교수가 묻습니다.
"레드라이트 직원이 자네와 다른 에이전시 직원이 주먹다짐하는 것을 봤다고 하던데."
"음... 맞습니다... 사실입니다, 교수님. 저와 라조브스키 요원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이었고, 저는 비번이었습니다. 저는... 저희는 바에서 술을 몇 잔 했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정말 바보같았습니다. 라조브스키 요원은 책임이 없습니다."
"단순히 비번일 때 술자리에서 벌어진 다툼 정도였다면, 우리가 이 자리에 있진 않을겁니다." 콰르테스가 쏘아붙입니다. "당신이 마시 사건 임무에서 감독했던 요원들이 상황 설명실에서부터 거친 말이 오고갔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런 멍청이들..." 밥이 입술을 질끈 깨뭅니다.
"우리는 당신이 해당 임무에서 라조브스키 요원의 역할과 숙주들의 처분에 대해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는 증언들을 확보했습니다."
"숙주들은 희생당했습니다. 임무를 완수하면서도 숙주들의 죽음을 방지할 수 있는 수 많은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능성'이라는 것들도 우리가 전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설명드려야 합니까?"
디어드레 콰르테스는 다른 컨소시엄 구성원들이 후드 아래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밥을 노려봅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꼼꼼하게 그 중요성을 비교합니다, 칼라비치. 우리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당시 상황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임무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디어드레 콰르테스는 강하고 분노 섞인 목소리로 딱 잘라 말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선택이 이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상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방문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번 임무의 숙주들의 경우 원래 죽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로라가 이미 십여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 했고, 모든 시나리오에서 해당 숙주들은 사망했습니다! 때로는 불가피한 일들이 있는 법이죠. 이런 경우 당시 상황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법은 죽음뿐입니다!"
그녀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강하게 말합니다. 밥은 그녀가 이례적으로 흥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콰르테스가 말할 수는 없지만 그녀를 옥죄는 숨겨진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밥은 임무가 주는 막중한 무게를 느끼며 이를 악뭅니다. 밥은 '상황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이사회가 자신들의 결정을 정당화하기에 가장 편리한 핑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 후회할 말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밥은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습니다. "아, 물론 그렇겠죠. 그런데 라조브스키는요? 그에게도 아무런 영향이 가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회의실에 흐르는 침묵... 밥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드론/전송 _ 7Z#24/S.S.U./계속
오전 11시 52분
이사회 임원들은 이제 막 회의실에서 떠났습니다. 그들의 음산한 목소리가 여전히 복도에 메아리칩니다. 사이버 퀀텀 유닛으로 이어지는 에어 락 한 편에 밥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징계 위원회는 끝났고, 밥은 휴식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는 가만히 서서 머리를 문지르고 있습니다. 몇 분 전 화를 내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밥은 적어도 앞으로 몇 시간 정도는 아무도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혼자 있고 싶은 상황입니다. 셔틀을 타고 이곳을 벗어나 버리거나 만취 상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대체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벌꿀주를 한 사발 마시고 취해버리고 싶습니다. 밥은 아직 그래도 버틸만하다는 생각을 하며 아무도 없는 복도 모퉁이를 힐끗 봅니다. 그는 생각에 잠긴 나머지 그의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드론의 그림자조차 알아채지 못합니다. 밥은 문을 향해 다가갑니다. 라조브스키를 만나기 위해...
잠시 동안 두 남자는 그대로 멈춰 서서 눈을 감습니다. 밥은 그의 동료 라조브스키의 비쩍 마른 모습을 살펴봅니다. 라조브스키는 움푹 파인 눈으로 밥을 바라봅니다. 원래 라조브스키는 이렇게 키가 크고 시체처럼 너덜너덜하지 않았었습니다. 둘 다 훈련생이던 시절, 라조브스키는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 칼라비치. 또 한 대 치시려고?" 라조브스키가 부어오른 입술로 싱긋 웃으며 쏘아붙입니다.
밥은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정말이지, 미안하다고. 내가 왜 그랬는지 도저히 모르겠어. 나는 정말..."
"됐어. 잊어버리라고. 무슨 상관이야? 나는 심지어 불평한 적조차 없다고. 이사회에서 괜히 트집 잡는 거야.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건가? 이사회에서 대체 뭐라고 하던가?"
"일주일간 정직과 공식적인 경고를 받았네."
"그래도..." 라조브스키가 밥의 어깨를 잡고 밥을 격려하며 속삭입니다. "...그렇게 심한 건 아니군. 우리가 훈련받을 때엔 더한 일도 겪었잖아. 기억나지?"
밥의 얼굴이 밝아집니다.
"2124년 임무 말하는 거지? 기억하고말고! 우리는 부주의하게도 호킹 정원 나무 아래에 마직 카드를 파묻어 버렸지. 그것만 있었어도 126배 정도 가격에 팔아버릴 수 있었을 텐데! 그것만 생각하면..."
"그러니까, 난 아직도 이 마직 카드가 아직도 유통되는 게 믿을 수 없다니까."
둘의 웃음소리가 에이전시의 텅 빈 복도에 메아리칩니다. 밥과 라조브스키는 출구를 향해 걸어갑니다. 레드라이트는 영업 중이고 둘은 아직 수다를 떨 시간이 있습니다.
영상은 멈췄다가 오후 3시 23분부터 이어집니다.
레드라이트는 절반쯤 빈자리입니다. 이곳은 에이전시의 직원들이 즐겨 찾는 술집이지만, 낮에는 한산한 편입니다. 낡은 조명 아래 라조브스키 맞은편에 앉은 밥은 오랜 친구의 손에 가득한 주름을 보고 넋이 나갈 지경입니다.
"이봐, 자네 책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밥이 말합니다. "1992년 숙주들의 희생 말이야. 나도 이 바닥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자네도 재미로 그런 건 아니란 걸 말일세."
"당연히 아니지!"
"그냥 화가 났을 뿐이야. 자네가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아 보여서 말이지. 나도 잘 모르겠어...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봐."
"나도 그게 자랑스럽지 않다고. 우리는 모든 상황에 단련되었잖아. 나도 그들처럼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긴 해.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던가 '어려운 선택이었다'하는 것들 말이야."
"맞아! 정확해. 이사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 그런데 라조브스키, 정말 이 일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자네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라고!"
"걱정 마. 생리 탱크에 1주일 들어가 있으면 다시 신생아처럼 될 테니까. 그게 내 일이잖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라조브스키가 앙상한 가슴을 내밀며 말합니다. "자유롭게 숙주와 결합하는 것..."
"자유로운 결합이라..." 밥이 한숨을 쉽니다. "다들 하듯이 신경 결합을 하는 게 안전하지... 이번 임무에서는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시간 여행 장치에 들어가 있었던 건가?"
"어떤 임무?"
"이번 임무! 1992 NT, 라인랜드의 임무 말이야."
"아, 정확히는 모르겠어. 적당히 있었던 것 같은데..."
"적당히라고? 이달 초였어. 봤지? 일 때문에 자네 뇌에 구멍이 나고 있다니까!"
"그만해, 밥. 충분하다고... 내가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되어서 그래. 정상이라고. 2주 가까이하고 난 직후라서... 이미 익숙해졌고 신경도 회복된다고..."
"자네는 이미 정상이 아냐, 라조브스키. 반복된 시간 여행이 자네의 뇌를 좀먹고 있고 정상이 아닌 상태라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거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찌 되었든 상관 안 한다고. 나는 시간 여행이 이루어지는 또 다른 시대와 세계에 속해있다는 느낌이 든다니까. 한 번씩의 런으로는 도저히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없지, 밥.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세상이 바뀌는 거야. 너무 깊이 숙주와 결합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릴 뻔하기도 했어.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라고. 나일강변에서 검게 탄 자신의 피부를 바라보거나, 누군가 천왕성의 위성 중 하나의 문을 열어젖힐 때... 별들이 춤을 춘다고..."
라조브스키는 공허 속으로 정신이 빨린 듯한 표정이 됩니다. 그는 생각의 흐름을 잃으며 정신 나간듯한 미소를 짓습니다.
밥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밥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바텐더에게 카드를 건넵니다. 밥은 더 이상 이곳에 더 머물 필요가 없습니다. 한때 라조브스키였던 이 남자에게 측은한 마음만이 가득해집니다.